기억에 관하여

 혹시 2006년에 방영한 시청률 21.4%의 대작 드라마 ‘환상의 커플’을 아는가? 이 드라마에선 기억상실로 인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드라마에서는 기억상실증을 매우 유머러스하게 풀어냈지만, 만약 우리에게 기억상실이 걸린다는 것은 매우 끔찍한 고통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의 추억들, 옛 연인과의 기억들도 모두 가진 채로 살아간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기억’에 관해서 서술하겠다.

 기억이란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기억(memory)을 정보를 부호화하여 저장 및 인출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기억이라는 능력을 정보처리 과정(information processing)으로 표현하여 하나의 과정으로 여긴다. 우선 기억은 가장 크고 단순하게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단기기억(Short-Term Memory, STM)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단기기억은 기억이 저장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특정 내적 표상의 집합에 인지적 자원의 초점을 맞추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인간에게 내재한 기제라고 생각해야 한다(Shiffrin, 2003). 쉽게 말하면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소유하게 되는 기억이다. 단기기억 중에는 영상 기억(iconic memory)이라고 불리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는 짧은 기간 동안 다량의 정보를 저장하게 해주는 시각 영역의 기억체계이다(Neisser, 1967). 이는 감각기억의 일종인데, 인간의 감각기관은 감각자극에 대한 감각 표상을 짧은 기간 동안 보유할 수 있다. 단기기억의 아주 대표적인 예는 우리가 일시적으로 핸드폰 번호, 자동차의 번호 등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들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되지만, 다음날이 되거나 조금의 시간만 지나도 떠올릴 수 없게 된다.

 단기기억과 비교되는 기억으로는 장기기억(Long-Term Memory, LTM)이 있다. 장기기억은 모든 종류의 경험, 학습, 규칙, 법칙, 정보, 지식, 감정 그리고 감각기억과 단기기억을 통해 습득된 개인만의 창고이다. 이 창고는 의식과 무의식에 영향을 주며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LTM은 세계와 자아에 대한 개인의 총체적인 지식을 형성한다. 이러한 장기기억은 사실과 사건에 관한 기억인 서술기억(declarative memory)과 행동들을 어떻게 수행하는지에 관한 기억인 절차기억(procedural memory)으로 나눌 수 있다. 서술기억은 의식적으로 노력을 통해 습득해야 하는 데에 반해 절차기억은 반복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습득된다. 또한 이 서술기억은 개인만의 고유한 경험의 기억인 일화기억(episodic memory)과 상식과 지식에 해당하는 의미기억(semantic memory)으로 나눌 수 있다. 일화기억은 개인의 경험적 사건을 저장한다. 이에 해당하는 예시는 너무나도 많은데 단순하게 생각해서 졸업, 혹은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에 관한 기억 등이 있다. 가령 여러 사람과 함께한 사건일지라도 그에 대한 일화기억은 모두에게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의미기억은 우리가 흔히 ‘지식’이라고 말하는 것들에 해당하는 기억이다. 수학에서 근의 공식, 혹은 멘델의 유전법칙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기억에 대해서 알아보고, 기억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설명했다. 지금부터는 맨 처음 설명한 ‘환상의 커플’속의 주인공 안나가 겪었던 기억상실증과 같은 기억장애를 설명하겠다. 기억장애는 기억을 인출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는 등의 상태를 의미한다. 기억장애는 의외로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기억상실증(amnesia)이다. 이 기억상실증은 기억장애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기억상실증은 크게 순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과 역행성 기억상실증(retrograde amnesia)으로 나눌 수 있다. 순행성 기억상실증은 신체적 손상, 즉 뇌의 손상으로 인한 것인데, 뇌의 손상을 발생시킨 사건 이후에 더 이상 기억을 형성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역행성 기억상실증은 뇌 손상 시점보다 이전의 기억들에 대해서 기억을 인출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